토트Thoth (출처: ancientexplorers.com)
한 번은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주사위, 체커, 숫자, 문자, 기하학, 천문학 등을 발명한 이집트의 신인 토트(Thoth)를 언급하며, 그가 이집트 왕을 방문해 자신의 발명품을 이집트 국민들에게 넘겨주자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집트 왕은 신이 줄 선물 하나하나를 놓고 저마다의 이점과 해악을 따졌는데, 마침내 토트가 문자의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문자가 기억과 지혜 모두에 유익함을 줄 것이라는 토트의 설명에 이집트 왕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문자로 인해 사람들이 앞으로는 쓰여진 것에만 의존하려 들 것이고, 따라서 더 이상 기억 속에서 무엇인가를 더듬어 내려 하지 않고 눈에 드러나는 기호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반박했습니다. 이처럼 구술성의 시대에 텍스트는 보편적인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이 배움을 얻고 배운 것을 전파하는 수단은 대화였으며, 소크라테스나 모세, 석가모니, 예수 그리스도는 훌륭한 구두 강의의 달인들이었습니다.
이 책에 있는, 13세기를 배경으로 그려진 삽화 속 학생들은 대부분 필기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현대의 학생들이 각자 책 문장에 밑줄 치고, 선생님의 설명을 책장 여백에 필기하기 위하여 필기도구를 손에 쥐고 있는 반면, 예전의 학생들은 대부분 필기도구라고는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들은 앞에 펼쳐진 코덱스를 보며 단락의 위치나 문자의 배열을 암기하면서도 요점을 책장에 기록하지 않고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존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저는, 시험준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조차 선생님의 강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필기한 노트와 강의교재를 나란히 펼쳐놓고 있어야 하며 시험이 끝나고 나면 투자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신속하고 완전하게 공부한 내용을 잊어버리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3세기 로마 시대의 의사인 안틸루스는 도전이 되는 글을 남겼습니다. “시구를 한번도 외워 보지 못하고 필요할 때마다 책을 들춰야 하는 사람의 경우는 텍스트에 대한 기억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 숨 한 번 내쉬는 것만으로 쉽게 지울 수 있는 유독 액체를 처리하는 데도 간혹 땀을 뻘뻘 흘리게 된다.”
유독 액체를 좀 더 용이하게 처리하고자, 나의 경우에는 블로그를 시작했었습니다. 이러한 동기에 따르면 내 블로그는 책을 읽다가 깊이 공감하게 된 구절이나, 영화를 보다가 깊게 감명받은 부분을 메모해서 보관하는 개인 서랍장에 다름 아닙니다. 다만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에는 메모를 여과없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포착한 그 부분의 의미구조를 해석하고 현실 세계에 적용하는 과정을 거쳐 산출해내기 때문에, 게시물들이 나름 내 자식같다 느낍니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검색이나 기타 여러 경로로 나의 블로그를 방문해 그 글을 읽게 될 익명의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블로그하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인간의 고차원적인 욕구에 충실한 행위이며 이러한 본능은 문자가 발명되고 책이 탄생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새는 모두들 텍스트를 탐독하는 동시에 생산해내기도 하므로 '읽고 쓰는 행위'는 이 시대에 특히 중요합니다. '읽고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하여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시대 모든 블로거들에게 권할 만한 이 책은 인간의 문화를 이룩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인간 고유의 기능 '독서'에 대한 제반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식이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구술의 시대, 한 권의 책을 펼쳐보기 위해 목숨조차 걸어야 했던 암흑기(중세)를 읽다보면, 지식에 대한 접근이 무한히 허용된 지금을 산다는 게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독파하고 나면, 종국에는 신께 예배하는 것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까지 일상의 많은 면면들이 독서와 밀접히 관련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덧. 예전에는 큰소리로 낭독하는 독서 기술이 당연시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눈으로 읽는 묵독이 정착된 시점은 언제일까요? 책의 외양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요? 누군가에게 대신 읽어 주는 독서 행위, 원전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해야만 하는 번역가의 독서, 현실에 무관심하고 괴리된 듯한 책벌레의 이미지, 책으로 점치기 등등... 독서라는 행위의 방대한 스펙트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책의 저자는 풍부한 독서량을 노골적으로 자랑하며 그에 대한 답을 또박또박 알려 줍니다. 그의 잘난 척만 참아낼 수 있다면, 이 책은 '독서'에 대한 다각적인 통찰을 보여줄 겁니다.
대신 책 내용이 머리에 엄~~청 안 남습니다. 잘 안 읽히는, 몇 줄 읽어 나가다가 다시 도로 되돌아가게 되는 그런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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