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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Film/Shoulders of Giants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다케나카 치하루] 정의로운 전쟁이 어딨어

by 지표덕후 2018. 12. 1.

이 세계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와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로 이분됩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유혈사태를 목격하곤 하는 지역은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체첸, 수단, 르완다, 시에라리온, 아이티 등과 같은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입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 당신은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그냥 안심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인가...


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 세계전쟁을 일으킬 만한 배짱과 군사력을 갖춘 대국은 사라졌습니다. 과거 소련의 유럽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설립한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러시아가 가입하려했단 사실은 이러한 판단에 힘을 실어줍니다. 지역적인 안전보장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동아시아의 경우, 잊을만 하면 발생하는 지역분쟁 - 독도, 대만해협 등 - 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 긴장도 높아지는 듯하지만 이러한 분쟁이 러시아와 중국, 미국 등을 필두로 한 대국 간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폭력적인 분쟁은 강대국, 즉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에서가 아니라 약소국, 즉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서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은 예전 냉전체제 하에서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리전의 양상을 띠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전반에 걸쳐 상황은 변해갔습니다. 소련 및 이를 계승한 러시아가 분쟁지역에서 갑자기 발을 빼고, 미국도 이에 보조를 맞추어 세계 각 지역에서 손을 뗐습니다. 강대국의 버림을 받은 약소국에서의 지역분쟁은 더욱 격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욱이 한 사회가 국외의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게 되는 오늘날에는 분쟁조차 '보더리스(borderless)'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쟁은 언제나 종교, 이념, 인종 등 그럴듯한 명분으로 덧씌워져 있지만 결국 경제적 이익이나 정치권력에 눈 먼 자들의 총부림에 다름아니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기 때문에 전쟁 앞에 '정의로운'이라는 수식어는 결코 어울릴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점을 분명히 주지시키며, 세계를 정의와 악으로 이분하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그네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믿어온 강대국들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려줍니다. 그의 글에 따르면,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최전선에는 역사적으로 여지없이 강대국이 내고 간 크고 작은 상흔이 남아있습니다.


현재까지 첨예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역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알아보아도 유럽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약소국에 대한 토사구팽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에 팽배한 민족주의는 유럽 내 소수민족에게 설움을 안겼습니다. 특히, 심한 탄압과 추방을 겪은 유대인들은 민족국가에 대한 간한 갈망을 갖게 되고 이는 '시오니즘'으로 발전합니다. 물론, 유럽에서 흩어져 살던 이들이 중동 미지의 땅으로 이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중동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석유 공급지로서 강대국들의 대립이 첨예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인도를 비롯, 아시아의 패권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의 입장에서 중동은 효과적인 식민지배의 거점이었습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상황은 제1차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크게 변합니다. 독일을 필두로한 동맹국과 영국을 필두로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4년간의 지리한 전쟁동안 유럽의 이웃인 중동 역시 중요한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열등한 전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아랍의 여러 부족을 이끄는 지도자들과 협력하게 됩니다. 이른바 '후세인-맥마흔 서한'이라 불리는 비밀협정은 영국정부와 하심가문의 후세인 사이에 채결된 것으로, 아랍 민족이 영국의 승리에 공헌한다면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한 아랍 지역의 독립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다른 구멍으로는 중동에 관한 권리를 다른 나라에 양보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 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러시아와 협상을 하여 전후 중동에서의 세력분할을 약속한 것입니다. 이에 더해, 영국은 유럽과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유대인을 끌어안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의 나라'를 재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내용의 '밸푸어 선언'을 승인합니다. 오로지 전력 차를 극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국은 이중 삼중으로 공수표를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랍 민족의 자결권을 담보로.


전쟁 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하는 중동지역은 국제연맹의 관할 하에 두는 위임통치지역이 되고, 유대인의 이주가 정식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후세인이 주도하는 아랍의 통일과 독립은 좌절되었고,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아랍 지역은 제국이 동맹국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영국과 프랑스의 협상에 의하여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 등으로 분할되었습니다.


그 후 15년도 채 되지 않아 재발한 두 번째 세계전쟁의 전후 처리는 유대인 박해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유럽이 미국과 연합해 아랍 지역에 이스라엘을 재건한다는 내용을 포함합니다. 그 결과,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결의안을 의결에 부쳤고, 서구 국가들의 조직인 유엔에서 이 결의안은 어렵지 않게 채택됩니다. '유럽의 유대인 차별'의 해결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 아랍 민족은 당연히 반발했습니다. 그들의 자결권은 여전히 부재하므로. 누구 하나 그에 대해 정당한 설명을 해주지도, 설득을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 뒤로 미국의 군사적 지원과 국제사회의 암묵적인 동조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아랍인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렇듯 자신들이 상처를 내고 제때 치유하지 않아 썩어 고름이 나오고 있는 상대를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나라'들입니다. 저자는 그들에게 책임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노력을 하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뉴욕의 어린이와 전쟁으로 발을 잃은 아프가니스탄 어린이가 서로 마음이 통하느냐의 여부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본문 중)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국내도서
저자 : 다케나카 치하루 / 노재명역
출판 : 갈라파고스 200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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