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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Film/Shoulders of Giants

[허클베리핀의모험, 마크 트웨인] 나는 내 멋대로 살거야

by 지표덕후 201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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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합니다. 주인공은 모험을 하고, 온갖 역경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그러나 매번 역경을 겪을 때마다 성정 상의 큰 변화, 주로 강한 힘을 얻곤 하는 모험소설의 전형적인 공식을 이 소설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Mark Twain. 그의 얼굴에서도 악동이 보인다



자서전식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 허클베리 핀(이하 헉 핀)은 지독한 악동입니다. 그나마 나이가 어려 악동이지, 어느정도 머리가 굵어서 똑같이 행동했다면 악당이라 지칭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였을 겁니다. 이 녀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왜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지?'라는 의아함이 들 정도로요. 그리고 여행 중에 헉 핀은 남의 물건을 자주 '빌려'옵니다. 그러나 돌려주지 않으니 훔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헉 핀의 다소 불건전한 언행 때문에 소설이 처음 발간되었을 당시 청소년에게 유해하며 악영향을 끼친다는 줄기찬 비난이 있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헉 핀을 볼 때마다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된 미국인들은 심장이 철렁 철렁 내려앉았을 건 뻔합니다. 당시 팽배했던 사회적 위선들을 꼬집고 조롱하는 정황들은 이 소설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그것이야 말로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여행의 모티브를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하듯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주는 재미는 여행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여행을 통하여 얻게 되는 헉 핀의 정신적 각성 또는 도덕적 통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서사 속 주인공이 육체적으로 각성하고 위기를 타개해 나갈 때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이 소설에서는 옳은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 모든 내/외적인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일을 기어이 해내고야마는 이 악동의 용기에 나를 대입해볼 수 있을 겁니다.


헉 핀이 흑인 노예 짐의 체포소식에 갈등하다가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이러한 대리 만족의 절정일 것입니다. 문명사회가 정해놓은 규약과 구속을 어기는 것 - 노예인 짐을 탈출시켜 자유롭게 하는 것 - 은 어린 헉 핀에게 '지옥에 떨어지게 될' 큰 잘못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그건 끔찍스러운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벌써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어린 악동은 자신의 직관과 양심이 하라는대로 행동할 것을 다짐합니다.


헉 핀이 모험을 할 수밖에 없도록 견인했던 거대한 흐름은 '자유에의 갈망'이었습니다. 낡은 도덕률과 윤리를 들이대는 전형적인 꼰대, 더글러스 과부댁과 왓츤이 싫어 가출했습니다. 비이성적이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돈벌이 수단으로 밖에 보지 않았던 아버지로부터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로 '억압과 구속'을 상징하는 흑인노예 짐과 미시시피 구석구석을 누볐습니다.  


허클베리 핀은 종교, 도덕, 법률,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편견과 그릇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직관적인 자아와 자연스러운 내적 충동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인물의 전형입니다. 작가는 이것을 더욱 확실히 하고 싶었던지, 허클베리 핀을 문명사회로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미개척 인디언 부락으로 떠나보내며 소설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국내도서
저자 : 마크 트웨인(Mark Twain) / 김욱동역
출판 : 민음사 1998.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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