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책은 일상, 우리가 늘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그 일상에 대해 설명해줍니다(잘난 척?). 이 책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에서 '주(住)'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뿌리내리고 있는 '집'에 대한 성찰을 제공합니다.
○ 행복을 위한 건축
건축의 의미를 믿을 때, 그 전제는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사람도 달라진다는 관념에서 비롯됩니다. 이로부터 건축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됩니다. 물론 이상적인 건축물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걸핏하면 언짢은 기분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이혼, 살인, 방화 등 온갖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일들이 아름다운 터전에서 일어났습니다. 건축에는 도덕적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강요할 힘이 없을 뿐입니다. 건축은 법을 만드는 대신 제안을 합니다. 우리더러 그 정신을 모방하라고 명령하기보다는 권유하며, 자신을 악용하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고통과 대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슬픔을 아는 것이 건축을 감상하는 특별한 선행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넓게 펼쳐진 오래된 마루널에서나 석고벽에 밀려드는 아침빛 사이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극적이지 않고 부서지기 쉬운 이런 아름다운 장면들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 뒤에 놓인 어두운 배경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어떤 스타일로 지을 것인가
우리는 건물이 우리를 보호해주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는 건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거나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을 이야기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통시적으로 각 시대, 각 나라의 풍경을 결정지었던 건축 사조들은 각자 다른 것을 말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각 시대의 정신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특권과 귀족 생활에 대한 것, 중세나 고대 로마에 대한 것, 현대에 와서는 속도와 기술, 민주주의와 과학을 약속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
본질적으로 디자인과 건축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그 내부나 주변에 잘 어울리는 생활입니다. 이 작품들은 거주자들에게 장려하고 또 유지하려 하는 어떤 분위기에 관해 말해줍니다.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 되라고 권유합니다. 행복의 전망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어떤 건물이 아름답다고 묘사하는 것은 단순히 미학적으로 좋다는 뜻 이상인 겁니다. 그것은 이 구조물이 그 지붕, 문손잡이, 창틀, 층계. 가구를 통해 장려하고자 하는 특정한 생활방식의 매력을 내포합니다. 아름답다는 느낌은 좋은 생활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물질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얻는 것입니다.
○ 말하는 건물
우리가 감탄하는 건물은 결국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가 귀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상찬합니다. 즉 이런 건물은 재료를 통해서든, 형태를 통해서든, 색채를 통해서든, 우정, 친절, 섬세, 힘, 지성 등과 같은 누구나 인정하는 긍정적인 특질들과 관련을 맺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좋은 삶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이런 시각적 취향과 우리의 가치 사이의 친밀한 제휴를 가장 투명하게 표현한 사람은 스탕달입니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스타일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이나 아름다움의 스타일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
알랭 드 보통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은 건축작품에 대한 그의 성찰을 확고하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맥도날드에서 요기를 떼운 후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들어 간 지 10분이 지나자 바깥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겼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갑자기 그럴 듯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천사가 당장이라도 런던 위에 겹겹이 쌓인 적운을 뚫고 내려와 회중석의 창으로 들어오면서 황금 나팔을 불며 곧 다가올 천상의 사건에 관하여 라틴어로 고지를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불과 4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튀김기름통 사이에서 들었다면 미친 소리로 들렸을 개념들이 지고의 의미와 장엄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건축 작품 하나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을 뒷받침할 물리적 배경으로 건축을 택합니다. 건축은 금방 사라지는 소심한 경향들을 포착하여 그것을 증폭하고 견고하게 만듭니다. 죽은 이에 대한 경외심, 그리움, 그리고 그가 생전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크고 작은 묘지를 세웁니다.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건축이 없다면 가끔 우연히 경험할 수 밖에 없었을 넓은 범위의 감정적 질감들에 더 지속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축물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넘어, 내적으로 닮아가기 위해 노력할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어려운) 책을 깔끔하고 압축적으로 요약한 부분이 있어, 소개하고 (사람 진 다 빼놓는) 이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우리 환경이 우리가 존중하는 분위기와 관념을 구현하고,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건물이 일종의 심리적 틀처럼 우리를 지탱하여,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 필요한 것 - 그러나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위험이 있는 것 - 을 표현해주는 물질적 형태들을 주위에 배치한다. 벽지, 벤치, 그림, 거리가 우리의 진정한 자아의 실종을 막아주기를 기대한다.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111쪽)
P.S. 이 일상성의 철학자는 우리 생활에 대한 성찰을 그 자신의 전문적 식견을 근저에 깔아놓고 담담하게 풀어나갑니다. 그러나 이번 책은 '건축'이라는 전문 분야가 이야기거리인만큼 읽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몇 번을 뒤로 다시 넘어갔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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