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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FILM/Shoulders of Giants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어른입니까

by 지표덕후 201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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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콤이라는 작은 마을에는 참 희안한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습니다. 미국민의 개인주의 성향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는 이미지에 따르면 주민들 서로는, 각자의 거주 공간을 이웃에게 잘 오픈하지 않고 친교활동도 소규모로 최소한으로만 할 것 같은데 이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관심이 참 많고,

또 일이 생기면 우르르 몰려오기도 잘 합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이 눈앞에 그려지는 느낌입니다.


자연스레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는데, 이들이 투닥투닥 만들어내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모두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거시적으로는 흑백갈등, 사실 너무나 일방적인 백인의 흑인 천시, 사소하게는 조용히 살고 싶은 이웃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호사가들의 뒷담화까지요.그들 스스로는 노골적으로든, 은근하게든 특정 타인을 그렇게 대할 수 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폐기된 옛 제도(노예제도)나 신의 가르침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서, 엉뚱하게도 흑인을 막 다루어도 된다는 당위를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어떤 사람 손에 쥐어져 있는 성경책은 누군가가, 그렇지, 네 아빠가 손에 쥐고 있는 위스키보다도 더 나쁘단다.


과거의 실수(진위여부가 증명되지 않은 루머임에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조용히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악담하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는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웃의 살림형편도, 배척의 이유가 됩니다.


메이콤군은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구호폼 바구니를 건네주고 극빈자 생활 기금을 주고, 또한 경멸을 보냈다.


그러나 자신들의 말썽 때문에 기상이변이 일어난다는 허무맹랑한 말조차 믿어 의심치 않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런 어른들의 태도와 기준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에이브리 아저씨는 아이들이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서로 싸울 때 계절에 이변이 일어난다고 로제타석에 적혀 있다고 말했다. 오빠랑 나는 이웃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우리에게도 달갑지 않은 이런 자연의 이변에 한몫 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에는 과거의 잘못이나 형편, 심지어 제도조차 사람이 타인을 부당하게 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그런 모습은 아이들을 아프게 합니다. 


스카웃, 나도 그건 알아. 바로 그 사람(길머 검사)의 말투 때문에 구역질이 난 거야. 그냥 구역질 말이야. (중략) 난 그런 거(검사와 피고인 관계 혹은 피고가 흑인이라는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심지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는 않은 채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안겨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빌은 울었습니다. 정황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흑인 아저씨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가엾었기 때문이지요. 


고결한 도덕성을 지닌 아버지에게서 교육받은 젬이 아니라, 떠돌이 빌의 입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도덕율이 튀어나옵니다. 아마도 작가는 배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한 때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던 

찬란했던 어린시절의 도덕성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랬던 아이들이 커가면서, 타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위계를 가슴 속에 내재화 하고 또 개중에서 편견과 차별의 선봉장이 나오는 이유는 어른들의 탓입니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어 있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며 울지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보아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봐, 그렇게 되지 않을테니.


왜냐하면 어른들은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 주장하며 항상 자신의 우산 아래 두면서, 곁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이라곤 타인의 우산 상태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심지어 우산 없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주기보다 피하는 천박함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 뿐만 아니라 모든 윤리적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모르는 우매함과 그른 줄 알면서도 물리치지 못하는 비겁함, 이익에 반한다면 옳은 일에라도 위협을 가하는 이기심. 아이들의 사회화의 과정이 저런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이 되어 버리는 건, 순전히 어른들의 탓입니다. 


영화 <앵무새 길들이기> 중


젬은 다른 누군가를 쳐다보기 전에 나를 먼저 쳐다본다네. 나도 그 애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살려고 노력해왔고... 이런 식으로 뭔가를 묵인한다면 솔직히 말해 난 그 애의 눈을 대할 수가 없지.


다행히 스카웃과 젬은 흑인을 변호하는 어른을 아버지로 두었으나, 불행하도 메이옐라는 흑인에게 누명을 씌운 어른을 아버지로 두었습니다. 나는 아마도 그 중간 어디쯤 있는 어른일 것 같습니다. 그게 씁쓸합니다.




앵무새 죽이기
국내도서
저자 : 하퍼 리(Nelle Harper Lee) / 김욱동역
출판 : 열린책들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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