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형님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그들의 문학 소양에 깜짝 놀라 나도 고전을 좀 읽어야겠거니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보금자리에 꽂혀있는 책들 중 쓸만한 놈을 물색하다가 가장 얇은 이 책,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선을 집었습니다. 사실 독일 관련 수업을 여러 학기 듣고, 거의 그 때마다 카프카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쉽사리 그의 작품 세계로 뛰어들 엄두는 내지 못하던 차였습니다. 흔히 알고 있듯 독일 소설은 재미가 없습니다. 미사여구를 지양하고 무미건조한 문체로 설득시키듯 조근조근 이야기합니다, 소설인데도! - 솔직히 이 책도 정말 내 생애 알약을 처음 먹었던 때처럼 억하심정으로 읽었습니다. 한 번 폈는데 안 읽으면 찝찝하니까요 - 한 번도 읽은 적 없지만 몇 번을 읽은 듯 귀에에 익은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 하루밤 사이에 사람이 벌레로 변신한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주변화된 인간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주제로 모의고사 지문에 등장하곤 했습니다.
어쨌든 그 유명한 <변신>을 풀버전으로 읽는다는 흥분과 강의 시간에 귀동냥으로 접했던 카프카의 작품 세계에 몸을 흠뻑 적셔보자는 기대는 딱 세 번째 단편까지만 나를 지탱해주었습니다. 이 분 소설은 내러티브도 없고 논리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 어렵습니다.
Franz Kafka
예컨대 단편 <판결 Das Urteil>에서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던 아들은 죄의식으로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자살합니다(!). 자기 변호가 자기 처형으로 급전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한 <시골의사 Ein Landarzt>는 급한 환자의 왕진을 가기 위해 자신의 보조를 악마에게 내어주고 마차를 빌립니다. 그렇게 찾아간 환자조차 의사는 살릴 수 없었으며 결국 야생마에 이끌려 알몸으로 어디론가 돌아갑니다. 결정적으로 작가는 <변신 Die Verwandlung>에서 한 인간이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신하게 한 것도 모자라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치명상을 입게 하고, 고독으로 비참하게 죽게 둡니다.
실제로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 내가 살아, 합심한 듯 서로를 살육하는 전세계 인간군상을 보았더라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호의적으로 표현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신물이 난다'는 표현이 적절하겠지요. 전쟁에서 인간 목숨은 벌레만도 못하고 누가 누구를 구원한다는 것은 지나친 허구인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구한다는 말입니까, 우리 모두 구제의 여지가 없는 죄인인데요. 작가 개인적으로도 상습적인 파혼과 결핵을 안고 살았으니 고운 내용의 소설이 나올리 만무합니다. 인간성에 대한 실망은 미술에서도 형식의 '파괴'라는 다다이즘을 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꿈, 악몽을 꾸는 듯 비논리적인,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카프카의 소설은 다다이즘의 작품들과 닮았습니다.
그나저나 카프카가 독자들이랑 친해졌으면 좋겠다던 옮긴이의 바람은 너무 야심찬 것 같네요. 욕심이 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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