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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Film/Shoulders of Giants

[파리의 노트르담, 빅토르 위고]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으로 읽으니, 대성당이 달리 보였다

by 지표덕후 2018. 11. 10.

최초 인간들이 기억력의 과중함을 느꼈을 때, 인류의 기억의 짐이 너무 무거워지고 혼잡해져서 고정되지 않은 벌거숭이의 말이 도중에 그 기억을 잃을 염려가 있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뚜렷이 보이도록, 가장 영속적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땅위에 옮겨 써놓았다. (334쪽)


현시대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미디어의 폭이 무진 다양합니다. 따라서 소리, 영상, 텍스트 등 어떠한 표현매체를 선택하든지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실어 보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미디어를 선택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글로써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글의 내용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고 그 후에는 메일, 휴대폰 문자메시지, 편지 등 여러 가지 전달 수단 중 어떠한 대안을 택할지 또다시 갈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야흐로 미디어 과잉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의 저자 빅토르 위고는 전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그것을 담아서 전할 미디어 수단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에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일조했던 돌의 역할을 역설합니다. 이를 위해 스토리 전개의 호흡을 잠시 멈추어 가며 무려 책의 한 꼭지를 온전히 할애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돌의 특징은, 주지하였다시피 시간적으로 영속성을 띠고 이동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돌이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던 문화에서 스핑크스나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왕의 권위를 웅변해왔습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스핑크스나 피라미드는 없었지만, 파리의 노트르담처럼 거대한 대성당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상상의 산물들을 건축술은 예배 의식에 어울리는 대수(對數)에 따라 배합한다. 밑바닥에 그토록 질서와 통일성을 간직하고 있는 저 건물들의 비상한 외적 다양성은 거기에서 유래한다. 나무의 줄기는 변함이 없으나 생장은 변덕스러운 것이다. (219쪽)


위고는 노트르담성당을 묘사하면서 여전히 장엄하고 숭고한 이 건물이 반원홍예 위에 첨두홍예가 치솟은, 즉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의 과도기적 건축물임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특성도 기독교 교회의 건축 자체에 내재된 상징, 원초적인 용도를 해치지는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적 모습이야 어쨌든 대성당은 결국 하나님께 예배하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출처: 파리 노트르담대성당 공식 홈페이지(http://www.notredamedeparis.fr/)




대성당이 존재하는 본연의 목적은 종교생활을 위함입니다. 이것은 건축물의 외양을 규정하는 양식이 무엇이든 공통된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육중한 몸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조금씩 다릅니다. 새로운 천 년을 막 지난 11세기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최후 심판과 종말론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예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겼던 이들은 죄에 대한 회개와 보속(補贖)및 자선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당시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배당은 새로 올 그리스도의 적들, 도처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위협하는 이단세력으로부터 지키는 견고한 요새였으며, 세상과는 구별된 확고한 이상세계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러한 상징을 구현하는 데 소재가 된 것은 성서의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선과 악의 최후 대결을 예언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당대에 구축된 기독교 문화에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습니다. 계시록에 따라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심판하는 심판자로서의 모습을 입었으며 교회는 계시록에 등장하는 천국의 모습대로 진주와 황금, 보석 등으로 치장하여 이상화되었습니다. 성유물과 금은보화를 수집하는 <장미의 이름> 속의 수도원은 일견 세속의 탐욕으로 가득 찬 것 같지만, 시대의 맥락 속에서 보면 종말을 앞둔 말세에 세속적인 외부세계와 철저히 분리되는 이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11세기 말엽 심판자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을 위해 성육신 되었다는 사상이 성 안셀름의 사상에서 처음 등장하기 시작하고나서 '범접할 수 없는 심판자' 그리스도에 대한 이미지는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마침 십자군에 의해 동방에서 가져온 예수 그리스도의 성유물 등은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사로잡았고 가난한 그리스도에 관한 이상은 많은 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습니다. 인간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고 교회는 육화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신의 현시에 초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 사상은 신학의 핵심이 되었으며 고딕 대성당에서 표현되었습니다. 마치 인간들이 신과 같이 높아지고자 하늘을 향해 바벨탑을 쌓아 올렸던 것처럼 고딕 성당의 외관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첨두홍예의 첨탑으로 상징됩니다. '위대한 신이 우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첨두홍예는 이러한 메시지로 인간의 위상이 신장되었음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대성당의 내부로 들어가면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 인간들의 평화로운 합일을 묘사하려는 시도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세속 군주들의 상(像). 이것들은 그리스도를 아기 예수로서가 아니라 왕으로서, 세상 통치자로서 그려내고 있는 직관적인 사례입니다. 프랑스의 군주들이 공을 들여 세운 건축물들은 어김없이 그리스도를 인류 최초의 스승으로 삼고, 그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 옥좌에 앉히고, 육체를 취한 신으로 모셨는데 이렇듯 고딕 예술은 그리스도의 육화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고딕 대성당은 신화적인 견지에서 사람들이 천국을 느낄 수 있도록 내부 공간을 꾸몄습니다. 그곳은 기하학적으로 규칙적이며 질서정연하고 일목요연하고 지속성을 지니고, 빛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결국 살아있는 존재와 영원한 신의 개념을 연결하는 기제로서 대성당은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루이 11세가 성모마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기 모습을 조각해 놓게 하였으며, … 이 예배당은 세워진 지가 겨우 육 년쯤 되었을까 말까 하는 아직 새 건물로서, 프랑스 고딕 시대의 말기를 보여주고, … 관례에 따라 연극은 대리석 탁자 위에서 상연되었다. (30~31쪽)


대성당은 그 건축물 자체로도 성서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지만, 도시에 위치해 사람들이 군집할 수 있는 장(場)을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였습니다.


대성당은 축일이면 도시의 각 교구에서 온 사람들이 운집하였습니다. 12세기와 13세기에 대성당들이 더 거대해지면서 이러한 역할도 보다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사회에서 신에게 예배드리는 거대한 바실리카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도시에 세워지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엄숙하고 웅장한 외관과 달리 대성당은 시민의 사회적 생활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었으며, 종교적인 목적 이외의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가는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 도시에서 유일한 거대한 규모의 공적 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시와 대성당의 발전은 함께였습니다.


교회는 친근하고 친밀한 공간으로서, 시민의 모임이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열렸으며 이곳에서의 회합이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몇몇 도시들은 시청사를 건축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본 소설의 무대인 파리의 노트르담성당 역시 시민 화합의 장으로서 대성당이 활용된 사례를 보여줍니다. 노트르담의 회랑에서는 성모마리아의 정기시가 열렸는데, 이곳은 대성당 참사회의 관할권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 사법권 안에 있었던 거리와 광장들에 바로 맞닿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대성당 참사원장은 정기시의 평화와 안전을 보호할 의무를 지녔고, 상인들은 참사원의 집 앞마당에 자신들의 진열대를 세웠습니다. 대성당 바깥과 바로 인접해 있는 세 개의 광장들은 가장 활기찬 정기시의 무대였습니다. 심지어 성지 순례객들은 대성당 안에서 잠을 자고 음식을 먹기조차 하였습니다. 이렇듯 중세 도시민들에게 대성당은 생존을 위해 찾아오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으며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오가는 생활 속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파리의 노트르담>에는 군주가 나오고, 종지기가 나오고, 주교가 나오고, 심지어 거지도 등장합니다. 각각 개별적인 서사를 담당하는 듯 하던 이들이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대성당을 중심으로 충돌하는 장면은 본 서평의 단초가 되는 깨달음을 제공합니다. 이전에 중세의 대성당이라 하면, 성서와 성인들의 이야기, 지켜야 할 교리, 거대하고 섬세한 석조물과 조각상들, 거룩한 장면을 재현해놓은 스테인드글라스들로 가득찬 공간을 상상하였습니다. 이단과의 전쟁을 위한 요새, 그 전쟁에서 승리한 기독교 왕국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주장하고 기념하기 위한 군주와 주교들의 염원의 산물이라 여겼습니다. 때문에 일반민들에게 그 공간은 그들이 참례하면서 기도하는 장소, 육화된 그리스도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영혼의 안식을 추구하는 예배당(바실리카)으로밖에 기능할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성당이라는 공간은 하나님, 육화된 그리스도, 군주들, 주교들, 다른 성직자들, 상인들, 교역상들 그리고 농민들을 하나의 거대한 체계 안에 연결시키는 매개(미디어)로서 모든 것이 표현된 곳이었음을 이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1
국내도서
저자 :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 Marie Hugo) / 정기수역
출판 : 민음사 200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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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노트르담 2
국내도서
저자 :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 Marie Hugo) / 정기수역
출판 : 민음사 200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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