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 Film/Shoulders of Giants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인간들에게 키스를 보낸다

by 지표덕후 2018. 12. 12.
반응형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세 권입니다. 리뷰는 커녕 요약도 능력 밖이에요. 그저 인상 깊었던 장면 정도나 나누었으면 합니다. 책 읽으신 분들이라면 알아보시겠지요...



마침내 인간은 그들의 자유라는 것과 누구에게나 넘쳐날 만큼의 지상의 빵이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자기네들끼리 그것을 분배할 능력이 없는 족속이니까!

...

인간은 신보다 기적을 추구하는 법이거든

...

네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이번에도 인간을 기적의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기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믿음을 갈망했기 때문이었다.               


- 이반의 서사시 속 대주교가, 그리스도에게


 

영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스틸이미지



친부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히 상상(드미트리, 이반)할 수 있는, 게다가 실천까지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것도 고매한 목적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욕정 때문에. 사실 소설에서 부자 간의 갈등을 유발한 그 감정을 사랑이라 포장한다 해도, 돈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었기에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그 동기는 결국 돈에 대한 욕정으로 치환해도 무리 없을 것입니다.


서사시 속 대주교가 역설한 것처럼 인간은 빵(인간적인 욕망)을 위해 자유(인간다움)도 포기할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대주교는 아마 피흘리며 누워있는 카라마조프를 보며 미소 지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간파한 이반은 서사시를 빌어 그런 인간을 마음껏 비웃으며, 인간을 이토록 불완전하게 내버려둔 신을 조롱하고 있지만 이반 역시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그는 못 견뎌합니다. 


아버지에게 살의를 느낀 건 드미트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드미트리 못지않게 이반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희망해왔습니다. 이 '기대의 권리'는 형사상의 범죄와는 무관하며 심지어 미필적 고의의 죄도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죄악을 심심치 않게 상상하곤 합니다. 거기에 죄값을 매긴다면 감옥은 자리가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머릿 속으로 짓는 죄도 똑같은 무게의 죄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조쉬마 장로는 이를 달리 표현하여,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 대하여 모든 것에 대해 유죄"라고 했습니다. 법지식에 해박하고 종교적 믿음이 없는 이반이 장로의 저 말을 들었다면 궤변으로 치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부살인의 진범(스메르쟈코프)이 이반의 묵인 하에 아버지를 죽였다고 진술했을 때 이반은 진심으로 경악합니다(자신이 의도적으로 그리 행동한 것이 아님에도). 아버지를 폭행하고 재산을 절도한 드미트리와 달리, 이반의 죄는 내적인 것입니다. 이반이 직접적으로 살인을 교사한, 혹은 유인한 정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반의 정신은 죄책감으로 황폐해져갑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대주교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고백하였음에도, 또 마음만으로는 살인죄가 성립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반 자신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결국 '입만 샛노란'(러시아 관용 표현) 젊은이였던 것일까요.


이반의 서사시에서 핏기 없는 입술로 대주교에게 입맞춘 그리스도는 오직 그것 뿐, 대주교의 조롱에 어떤 반론(이념, 로고스)도 없이 침묵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화해일 것입니다. 사건을 대함에 있어서 이반과 알로샤의 태도는 대주교와 그리스도만큼 다릅니다. 이 모든 아사리판이 이반에게는 '인간 세상의 비극'에 다름 아니지만, 그리고 그 판에 자신이 개입되어 있음에 그저 괴로워하지만, 알로샤에게는 한알의 밀알이 썩어지는 과정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서문에 썼듯이, 한 알의 밀알이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악인이 결국 망하고(스메르쟈코프의 죽음), 양심있는 인간들은 종국에 보상을 받으리라는 낙관을, 친부살인을 테마로 한 이 소설은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없다는 거냐? 만약 라키친(이반)이 옳다면, 아니 그래, 이건 인류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관념에 불과하단 말이냐? 그럼,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이 이 땅, 이 우주의 우두머리라는 소리인가? 멋지군! 다만, 하나님 없이 인간의 어떻게 선량할 수 있단 말이냐? 정말 문제야! 내 생각은 오직 이 뿐이야.


- 드미트리가 옥 중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국내도서
저자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 / 김연경역
출판 : 민음사 2012.11.06
상세보기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