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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Film/Shoulders of Giants

[총,균,쇠,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환경은 재료다, 몹시도 중요한

by 지표덕후 2018. 12. 11.

1.

우리는 우리의 문명과 운명이 주어진 환경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못 견뎌합니다. 그래서 환경결정론자들의 주장을 큰 고민 없이 비난하곤 하는데 그 논조의 대부분은 "인간이 가진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러 예로 드는 것이, "보편적인 역사, 즉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룩한 업적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여기서 활동했던 '거인들의 역사'다"라는 토마스 칼라일의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보았던 문명의 흥과 쇠, 국가의 생성과 소멸, 민족 간의 지배와 피지배가 반복되어 현재에 완성된 이 그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그림은 특출난 소수가 그려놓은 것인가요?



Alexander and Porus by Charles Le Brun, 1673 via Wikimedia Commons


이 책 <총, 균, 쇠>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거인들의 붓질이 크고 진한 흔적을 남겨 이후 붓이 가는 경로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광범위한 경향까지 몇몇 거인의 손에 좌우될 정도로 이 캔버스는 작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당시 서유라시아에서 이미 문자를 갖고 식량을 생산하고 철기를 사용하던 여러 국가들의 진로를 조금 바꿔놓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아직도 문자와 금속기를 갖지 못한 수렵 채집민 부족민으로 살아가던 시기에 서유라시아에는 이미 문자를 갖고 식량을 생산하고 철을 사용하는 국가들이 들어섰다는 사실과 대왕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2.

몇몇 거인이 아니었더라도 인류 발전의 혜택을 누군가는 누리고,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였을텐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엉뚱한 요인에 귀속되는 바람에 저자의 원주민 친구는 이렇게 묻습니다.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하는 겁니까?"


분명 이 친구와 같은 뉴기니의 원주민 부족과 유럽이나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생활양식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차이가 뉴기니인들의 지적 능력이 백인들의 그것에 비해 뒤처져서 그런 것(생물학적 차이)이 절대 아님을, 단지 아주 먼 옛날 진행된 인류 부동산 입지의 결과(환경적 차이)가 누적되어 그런 것임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 상 일관된 패턴 (출처: <총, 균, 쇠> 본문 중)




3.

물론 인류 사회의 역사적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저자도 네 가지 가장 중요한 (지리적 여건에서 비롯된) 차이점이 인류사의 궤적을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고집스럽게 강변하는데, 첫 번째는 가축화,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간 분포 차이입니다. 그것은 식량 생산이야 말로 잉여 식량을 축적하는 데에, 그리고 아무런 기술적 정치적 이점이 없어도 순전히 그 숫자만으로도 군사적 이점을 갖는 '대규모 인구'로 성장하게끔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인간 사회가 조그마한 초기 추장 사회의 수준을 넘어 경제적으로 더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된 사회로 발전할 때는 언제나 식량 생산이 그 기반이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수많은 동식물종들 중 대부분의 야생 동식물은 가축화 혹은 작물화에 부적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축이나 작물이 되어 식량 생산에 이용된 종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몇 안되는 종들을 이 넓은 세계가 찢어 가져야 했음에도 그러한 혜택은 (비옥한 삼각지대라 불리는) 유난히 조건이 좋은 지역에 집중되었습니. 만약 여건이 허락된면 이러한 혜택뿐만 아니라 발달된 기술과 정교한 정치조직 등의 문물도 덤으로 차지하게 됩니다.


첫 번째 요인 때문이라도 두 번째 요인이 몹시 중요해집니다. 대부분의 사회는 스스로 발명하는 문물보다 다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문물이 훨씬 많았으며 이것은 환경의 혜택(가축화/작물화 가능한 동식물)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확산과 이동의 속도를 결정하는 요인들은 혜택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만큼이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대륙의 주요 축이 동서 방향이며 생태적 지리적 장애물이 비교적 적었던 유라시아에서는 확산과 이동의 속도가 빨랐습니다. 반면 대륙의 축이 남북 방향이며 생태적 지리적 장애물도 많았던 아프리카에서의 확산속도는 유라시아에 비해 느렸습니다(경도는 시간을, 위도는 기후를 결정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두 번째 요인이 각 대륙 '내부'에서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었다면 세 번째 요인은 바로 각 대륙 '간'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인데, 이 요인들도 가축 작물을 들여오거나 기술을 축적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대륙은 다른 대륙에 비해 더 많이 고립되어 있고, 따라서 확산의 난이도 역시 이런 여건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지난 6,000년 동안에는 유라시아로부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 확산되는 것이 가장 쉬웠고 아프리카의 가축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동서 각 반구 사이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복잡한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확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저위도 지방에서는 드넓은 대양에 의하여, 고위도 지방에서는 수렵 채집 생활(이뉴이트)에나 알맞은 기후와 지리적 조건에 의하여 유라시아로부터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결국 아메리카 원주민은 백인 이주민에 의해 거의 멸종되다시피..).


네 번째이자 마지막 요인들은 각 대륙의 면적 및 전체 인구 규모의 차이입니다. 면적이 넓거나 인구가 많다는 것은 곧 잠재적인 발명가의 수도 많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의 수도 많으며 도입할 수 있는 혁신의 수도 많다는 뜻입니다. 또한 인접한 곳에 라이벌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생존 자체에는 위협적일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한) 혁신과 노력에는 어마어마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라시아는 항상 그러한 긴장 상태에서 혁신과 업그레이드가 반복되었으며 규모가 작거나 지리적, 생태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나머지 대륙들은 그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4.

특정 인종은 똑똑하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견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위에 제시된 대륙간 차이는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하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리적 결정론'을 거론할 때 여전히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동식물군의 분포 따위에 운명이 결정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이지요. 


인간의 창의성은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환경은 다른 환경에 비해 더 많은 재료를 구비하고 있으며 발명품을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여건도 한결 유리하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것이 저자가 원주민 친구에게 해준 답변입니다.




총,균,쇠
국내도서
저자 :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 / 김진준역
출판 : 문학사상 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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