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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FILM/Shoulders of Giants

유현준(2015).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을유문화사

by 지표덕후 201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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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국내도서
저자 : 유현준
출판 : 을유문화사 201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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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
지금은 휴대 전화, 전투기, 우주 왕복선 같은 첨단 제품들이 많기 때문에 건축물을 최첨단의 결정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근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축물은 그 나라의 기술력과 재력을 보여 주는 과시의 상징이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반영되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물은 사람이다. 그리고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그림인 것이다. 건축물의 이러한 특징은 랜드마크적인 건축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 지역의 지리적, 기후적인 특색이 반영된 일반적인 건축물들 역시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DNA를 보여 주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건축물을 이해하면 그 배경에 있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기술, 예술, 문화인류학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1
강남의 테헤란로는 성공적인 거리이기는 하지만, 걷고 싶은 거리는 아니라고 평가된다. 반면, 명동 같은 거리는 성공적인 거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걷고 싶은 거리이기도 하다.

휴먼 스케일(인간의 체격을 기준으로 한 척도. 건축, 인테리어, 가구에서 적용하는 길이, 양, 체적의 기준을 인간의 자세, 동작, 감각에 입각해 적용한 것 또는 적용한 단위)의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p.23
보행자가 걸으면서 마주치는 거리 위의 출입구 빈도수와 걷고 싶은 거리의 상관관계

p.24
다시 말해서 당시의 이동 수단은 느렸고, 그 느린 이동 수단 때문에 사람들의 시간 거리가 길어지게 되고, 따라서 물리적인 도시의 도로망은 짧은 단위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로의 결절점이 더 자주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만큼 보행자는 더 다양한 선택의 경험 혹은 진행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난 도로의 공간감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 이러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이 생겨날수록 그 도시는 우연성과 이벤트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p.25
단위거리당 출입구의 숫자가 많아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은 경우를 ‘이벤트 밀도가 높다’라고 표현해보자.
단위 거리당 상점의 출입구 수가 많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공간의 주도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보행자 입장에서는 그의 세상(a world)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p.26
둘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 2~3초에 한 번씩 채널을 바꾼 경험ㅇ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 특별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서로 다른 채널의 화면 속 영상들이 새로운 시퀀스로 편집되어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고, 단순하게는 다른 채널로 바뀐다는 변화의 리듬감 때문에도 끊임없이 TV 앞에 앉아있게 된다.

셋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p.29
경험의 밀도를 필자가 계산해보니 ‘명동거리 = 가로수길 > 홍대 앞 피카소 거리 > 강남대로 > 테헤란로’ 순이었다. 

p.31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p.32
우주 공간도 무한한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잘 인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 별과 달이 보이기 시작하면 공간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 그 빈 땅 위에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거리라는 새로운 공간이 구축되고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p.43
우리가 세종로를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려면 건축물 앞에 한 줄로 가게를 설치하고 인도 위에는 버스 정류장 외에도 노천카페를 설치하여 전체적인 공간의 속도를 낮추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44
앞선 조사 결과를 보면 거리의 속도가 사람의 걷는 속도인 시솔 4킬로미터와 비슷한 값을 가질수록 사람들이 더 걷고 싶어 하는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50
주변에 나무가 많은 경우에는 나무로, 돌산이 가까우면 돌로, 이도 저도 없으면 흙으로 빚어 구운 벽돌로 도시 내 대부분의 건물을 지었다. 구조 기술적인 면에서 본다면 성당이나 궁궐 같은 특별한 건축물만 가끔 큰 스케일로 구축했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 인간의 노동력으로만 지어야 했기에 휴먼 스케일의 건축물들이 대부분이었다. … 현대에 들어선 이후 크레인과 철골 구조의 도움으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쉽게 휴먼 스케일을 넘어선 대형화로 진행 가능해졌다. … 건물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이상 거리로 나와서 다니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없어지는 도시 공간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 물론 간판들은 정리되어야 한다. 간판이 정리되면 건물이 보일 것이고, 그러고 나면 비로소 건물이 정리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 서울은 여름철이 그나마 좀 볼만하다. 가로수와 잡초가 건물과 간판을 많이 가려 주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되려면 겨울에 아름다워야 한다.

p.52
과거에는 건축 재료가 한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건물의 형태는 오히려 지형에 맞게 복잡하게 만들어졌다. 반면 최근에 지어지는 도시에서는 지형을 건물 짓기 쉽게 불도저로 밀어 버려서 평평하게 만든 후 단순한 상자 형태의 건물을 짓는다. 각각 건물의 형태는 경제적인 원리로 비슷하게 나오는 반면, 재료는 오히려 복잡하게 사용한다. … 형태도 단순하고 재료도 단순한 경우(한국의 아파트 단지), 형태는 복잡하고 재료는 단순한 경우(그리스 산토리니 섬), 형태는 단순하고 재료는 복잡한 경우(서울의 논현동 뒷골목), 형태도 다양하고 재료도 다양한 경우(서울 청담동 명품 플래그샵 거리)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형태는 다양하고 재료가 통일되었을 때 도시 공간이 다이내믹하고 좋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스턴의 뉴베리 거리는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유서 깊은 오래된 건물이 있는 거리로 유명하다. 보스턴 시는 이 뉴베리 거리에 신축되거나 리모델링되는 건축물의 재료를 모두 붉은 벽돌을 사용하게 규제함으로써 재료의 통일감을 보존하여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p.54
근대 이후 건축물에, 특히 개발도상국에 지어지는 대부분의 현대 건축물 및 도시를 만드는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이다. 이 분이 주창하신 도시의 비전 중에 ‘빛나는 도시’라는 것이 있다. 이 계획안은 파리 도심을 고층 아파트 단지로 리모델링한 신도시 계획안이었다.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고밀도의 고층 대형 건물을 지어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크게 떨어뜨려 놓고 그 사이에 공원을 만들어서 도심 속에서도 자연을 느끼면서 살게 하자는 이야기이다. … 아파트 단지에는 골목은 없고 복도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골목과 복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근본적인 차이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p.56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작은 골목에서 온갖 스포츠를 다 했는지 의아하다. 이것만 봐도 어린이의 스케일은 확실히 어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놀 때,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자연스레 어머니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p.56
르 코르뷔지에 디자인에서 자연은 일상에서 체험되기보다는 보기만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계획안은 실패하였다.

p.59
경제성과 상업성만 생각한다면 당연히 용적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재의 방식이 정답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시의 풍경은 너무나도 삭막한 공간이 된다.

p.61
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그 나라의 기술, 경제, 사회가 만들어 낸 선이다. 그 선은 하늘과 인간이 줄다리기를 한 결과물이다.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스카이라인 대신 지평선이 있었다.

p.61
당시의 유럽 사람들은 종교 활동 등 각종 대형 집회를 위해서 커다란 내부 공간을 만들길 원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대형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방식은 돔 구조였다. … 옛 사람들은 나무로 틀을 짜서 돔의 내부를 만들고 그 외부에 돌, 벽돌, 콘크리트 같은 재료를 이용해서 돔을 만든 후에 내부에 있는 나무 구조체를 해체하였다. … 시에나와 경쟁을 하던 피렌체는 시에나보다 더 큰 돔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목재가 귀해져서 가능하면 목재를 사용하지 않고서 돔을 만들 새로운 기술을 원했다. 바로 이 때 천재 건축가 부르넬레스키가 목재를 적게 사용하고 돔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구조법을 개발하여 지금 우리가 보는 피렌체의 대성당 돔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건축 방식으로 특허를 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특허권이었다.

그런 조건에서 고층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해 주는 엘리베이터라는 기술과 고층 건물을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새로운 철골 구조라는 기술이 합쳐져서 이전에는 없었던, 하늘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뉴욕만의 독특한 고층 건물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p.66
그렇기 때문에 대중음악처럼 콘셉트부터 완성품까지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화가도 혼자서 작품을 완성하지만 그 작품은 미술관이나 화랑에 가야만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약이 있다. 반면 대중음악은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든 편하게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어느 예술에서도 찾기 힘든 장점인 듯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주택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기계”라고 정의 내렸다. 건축에서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

 


p.71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는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펜트하우스는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가장 확실히 보여 주는 공간 형태다. 건축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구조를 그 내부에 숨기고 있다.
‘공간은 권력을 만들어 낸다’라는 명제를 팬옵티콘(Panopticon)처럼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p.75
죄수를 감시하는 것은 간수가 아니라 팬옵티콘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에서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왕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온 국민이 목도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제 권력자들은 시민들이 봉기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권력이 전복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19세기에 파리를 재개발할 때에 시민을 통제하기 쉬운 공간 구조로 재구성하게 된다. 원리는 간단하다. 파리를 방사형의 도로망으로 만들어서 모든 길들이 주요 간선도로로 연결되고 그 도로는 다시 개선문 광장을 향해서 방사형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개선문 위에 대포 몇 개만 설치해 놓아도 간단하게 모든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방사형의 도시 구조는 방사상의 중심점에 서 있느냐, 반대로 주변부에 서 있느냐에 따라 권력을 차등적으로 갖게 된다.
이와 다르게 격자형 도로망은 모든 코너가 동일한 권력의 위계를 갖는다. … 뉴욕 같은 경우에는 이 같은 격자형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브로드웨이가 디자인되어 있다. 대부분은 공공 공간은 격자형과 대각선이 만나서 삼각형 같은 독특한 공간 구조가 형성되는 결절점 부분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뉴욕의 타임스퀘어가 대표적인 예이다.

p.77
볼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고, 보지 못 하고 보이기만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 연극 극장 같은 경우에는 더욱 확실하다. 배우들은 관객이 있는 줄 알면서도 없는 ‘척’하면서 연기를 한다. 배우가 관객에게 돈을 받고 일정 시간 동안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p.79
수공간은 확연히 다른 공간으로 건너갈 때 쓰는 건축적 장치이다.

p.85
우리나라의 학교 운동장은 그저 새벽에 조기 축구나 할 뿐 공동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못하다. 학교 운동장은 고밀도 도심 속에 여유를 주는 좋은 자원인데도 말이다. 유럽의 광장 주변에는 예외 없이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 학교 운동장 주변으로 그런 상점들이 들어선다면 운동장을 광장처럼 사용하면서 학교 중심의 공동체 형성과 학교의 보안 문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도시 계획 초기 단계에서 토지이용계획을 잡을 때부터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우아하게 차를 마실 수 잇는 도시, …

p.87
창문은 건축물의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소통의 요소이자 ‘바라본다’는 권력을 조절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p.90
요즘같이 에너지가 귀한 시절일수록 체적이 넓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한 크기의 3차원 공간의 환경을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p.97
건축은 사회, 경제, 역사, 기술의 산물이며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이 명제를 뉴욕의 로프트(Loft)처럼 잘 보여주는 건축 형태도 없다. 로프트의 사전적인 정의를 찾아보면, ‘예전의 공장 등을 개조한 아파트’라고 되어 있다. … 초기 산업 시대에 뉴욕은 미국 최대의 항구도시였다. … 산업도시로서의 기능도 많이 요구되어 고밀도의 공장이 생겨났다. 그것이 지금의 소호 지역 등에 많이 지어진 높은 천장 높이의 건물들이다. 건물 안에는 방적기계 같은 큰 기계가 설치되어야 했기 때문에 기둥 간격도 넓고 천장도 높았다. 그리고 물건을 옮기기 위해서 대형 홤루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높은 천장 때문에 창문도 크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햇볕가 통풍이 잘되는 공간이다. … 시간이 지나 2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이러한 공장들이 차차 문을 닫고 비어 있는 건물로 남게 되었다. ... 빈 상태로 방치되어 치안 문제 … 시는 헐값에 예술가들에게 임대해 비어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살게 하였다. … 예술가들이 모이자 당연히 그들의 작품을 파는 화상들이 주변 건물 1층에 갤러리를 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시회를 보고 작품을 사기 위해서 돈 많은 은행가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 ‘은행가 사람이 모이면 예술 이야기를 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 부자들이 이사를 오게 되고 높ㅇ느 천장 높이의 트인 공간에서 사는 것이 뉴욕 여피(Yuppie)들의 ‘쿨’한 삶의 형태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 당연히 임대료가 오르고, 그걸 구경하기 위한 관광객들이 모여들면서 정작 비싼 임대료 때문에 예술가들은 다시 다른 동네로 …

p.101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돈 많은 유태인들이 사는 좋은 동네였다면 믿어지는가? 그러다 주변에 흑인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하고 당시 강 건너 뉴저지에 마당이 있는 교외 지역(sub-urban)에서 사는 것이 돼세가 되면서 이 지역 유태인들의 엑소더스가 가속화되었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 교수가 주창한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p.104
음식 부패를 막는 냉장고 덕분에 더 이상 식료품 가게 주변에 모여 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한 시간 달려서 일주일치 음식을 트렁크에 가득 담아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 거속도로, 자동차와 더불어 냉장고는 당시 미국 사람들의 삶을 교외에 위치한 주택에서의 삶으로 개편시켰다. 그래서 유태인은 할렘을 떠나 뉴저지와 롱아일랜드로 떠난 것이고 그 자리를 자동차가 없는 도시 빈민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p.107
도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지낸 후, 쇠퇴하고, 마지막으로 죽는다. 도시의 여러 부분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나중에 죽는다.

보통 변화하는 환경에 건축이 적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환골탈태의 방식으로 기존의 건축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재개발 방식이다. … 다른 하나는 기존의 건축물을 유지하면서 재생하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를 도시 재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북촌은 서울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주거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약간 경사가 져 있는 지형이라서 배수가 좋았다.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는 양반들의 집들이 많이 위치한 좋은 주거지였다. … 법규 같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하드웨어인 한옥을 교체할 수 없게 되지,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용도를 변경하여 건축물이 생존 … 

p.112
(뉴욕 맨하탄의) 하이라인의 경우 고가 철도와 주변 건물이 붙어 있어서 공원화 이후 주변 건물 재생의 시너지 효과가 상당히 컸다. 하지만 서울역 고가도로는 이 같은 시너지는 기대하기 힘들다.

격자형이되 가로는 길고 세로는 짧은 형태의 격자형이다. 가로로 형성된 길은 스트리트이고 세로로 난 길은 avenue로 명명되어 있다. … 뉴욕의 보편적인 블록 크기를 보면 가로는 250미터, 세로는 60미터의 블록 사이즈를 가지고 있다. … 에버뉴를 따라서 걸을 때는 약 1분의 시간이 걸린다. … 게다가 에버뉴는 남북 방향으로 나 있어서 동서 방향으로 난 스트리트보다 햇볕도 더 잘 든다. 햇볕이 잘 들고 걸을 때 1분마다 새롱누 거리를 마주친다는 것은 좋은 느낌일 것이다.

p.115
2013년 복원된 남대분 … 국보1호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론 … 건축물을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적으로만 생각하는 아쉬운 가치관이 숨겨져 있다. … 수백 년 전 조선인이 디자인하고 당대 최고 구축 기술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로서의 가치를 가졌다는 것이다. … 건축은 오브제(object)의 성격이 강한 도자기나 그림과는 다르다. 건축은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료가 교체되고 복원되고 사용되면서 보존되는 것이 옳다. 남대문은 재료가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에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인 것이고, 그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결과물인 남대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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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빌딩, 다리, 상하수도 시설, 도로 같은 도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물리적인 구조들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는 실제로 도시설계자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자연 발생적인 방식에 의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 왔다는 면에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자생적인 유기체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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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기계는 스스로 성장, 발전하지 않고 디자인된 초기 상태에서 노후가 되는 닫힌 시스템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시스템은 모든 구성 요소들이 … 2002년에 노벨상을 받은 MIT의 호비츠 교수에 의하면 많은 세포들이 자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일부 세포는 스스로가 일정 시간이 되면 스스로 자살하듯이 소멸되고 새로운 세포로 적극적으로 교체되는 것이 생명체 고유의 특성임을 밝혔다. … <생명의 그물>의 저자 프리초프 카프라 박사에 의하면 어떠한 시스템이 살아 있는 유기체냐 죽어 있는 무기체냐를 결정하는 요소는 그 조직체의 패턴이 스스로 만들어지는(Self-Marking) 네트워크냐 아니면 외부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p.126
서울 강남의 경우 초기에 격자형태의 도로망은 도시 계획자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이후에 학군제 형식의 교육제도, 베이비 붐 세대의 인구 폭증, 주택 가격, 핵가족화 경향, 경제 성장, 문화적인 변화, 부동산 정책 등 셀 수 없이 많은 변동 요소에 의해서 지금의 서울 강남의 도시 구조가 완성된 것이기에 그 결과물은 자연 발생적인 생태계의 특징과 더 유사한 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p.126
로저 르윈Roger Lewin 박사에 따르면 “생명의 진화 속에서 과거의 경험들은 DNA 안에 유전적인 메시지 코드로 압축 저장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같은 시간으로 도시를 바라보면, 오랜 역사를 통해서 구축된 과거 경험의 흔적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 주거 형태, 도로, 광장, 학교, 대중교통 체계, 상하수도 시설 같은 인프라 구조라는 우리 도시의 DNA 속에 유전적 메시지 코드로 압축 저장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도시의 패턴은 인류 사회의 초기부터 진화되어져 왔다.

p.131
도시에서 상수도 시설은 유기체에서 혈관 중에서도 동맥의 형성과 의미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고대 로마는 순환계 부문에서 가장 먼저 진화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순환계 다음의 진화 단계인 신경계는 생명체 내에서 각기 다른 기관과 세포 간의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도시 시스템에 비유한다면 사람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교통망이 이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p.138
우리는 건축 자재로 건축물을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건축이 다시 우리의 삶과 정신과 문화를 만든다.

경제학자들은 보통 도시화의 비율이 80퍼센트 정도 수준이 되면 도시화가 마무리 되었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화의 비율은 85퍼센트 정도이다.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끝났다고 보는 것이 옮다. 

p.143
팰럼시스트(Palimpsest, 복기지)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원래 양피지 위에 글자가 여러 겹 겹쳐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양피지에 글을 쓰던 시절에는 귀한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서 이미 쓰여 있는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자를 써서 이전에 쓴 글자들 위로 새로이 쓴 글자가 중첩되어 보이는 일이 흔했다. 이런 뜻의 단어가 건축에서는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현재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은유적으로 설명할 때 사용되고 있다.

p.144
이후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하천의 위생적 문제가 심각해지고 동시에 자동차도로의 확보가 도시 형성에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으로 부각되면서 하천 부지는 거의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되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이후 수백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로마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테베레 강의 범람에 의해서 6미터 가량의 퇴적층이 쌓여서 과거 유적들이 덮어졌고, 이후 꾸준히 인구가 늘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고대 로마의 도시 흔적이 다른 종류의 도시 공간으로 전이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이었던 곳이 퇴적된 흙으로 덮여져 없어지고 그 모양만 남아서 지금의 나보나 광장이 된 곳이다.

p.146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은 없어지고 바로크 시대에 베르니니에 의해서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바뀌었지만, 말굽 모양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나보나 광장의 형태는 과거 로마 시대의 경기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사가 깊은 도시들은 마치 여러 장의 트레이싱페이퍼(투사지) 그림들이 쌓여 있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도시 디자인은 쌓여 있는 여러 장의 트레이싱페이퍼 그림들을 한 장씩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어느 부분은 지우고 어느 부분은 살리면서 상호관계를 조절해 오늘의 이야기를 하는 그림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p.148
소주는 생산하는 사람이나 지역의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반영되지 않고, 인간과 격리된 가치를 가지는 술이다. … 포도주는 좋은 건축물 같다. 같은 종자의 포도라도 생산되는 땅의 토양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생산되고, 같은 종자의 포도와 같은 밭이라고 하더라도 그 해의 기후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만들어지며, 똑 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포도를 담그는 사람에 의해서 다른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 포도주다.

p.149
하지만 물질이 합쳐져서 나타나는 건축’물’이 궁극적인 목표여서는 안 된다. 그 이후에 만들어져야 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삶이 우리 건축가가 궁극적으로 바라보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지향점이다. …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오피스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는 ‘뉴욕 시티콥 센터’이다. 이 건축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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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건축가는 미국의 ‘공중권(Air-rigth)’라는 법규를 이용하여 전화위복을 만들었다. 미국에는 공중권이라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건축 법규가 있다. 이는 대지의 용적률로 보아 30층까지 지을 수 있는 땅이지만 현재의 건축주가 1층짜리 건물만을 가지고 있고 이를 부수고 다시 지을 계획이 없을 경우, 자신의 땅 위에 지을 수 있는 29층의 권리를 옆의 땅 주인에게 팔 수 있는 법이다. 

p.151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건축가는 빌딩의 고층부에 튠드 매스 댐퍼(Tuned Mass Damper)라는 기계장치를 해 놓았는데, 그 원리는 무거운 추가 네 개의 끈에 매달려 있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추가 이동하게 만든 장치이며, 빌딩 내부에 설치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풍압력에 카운터 밸런스를 맞추어 주는 식으로 구조적인 보강을 하였다. 이 기법은 지금도 대만의 타이페이 101 같은 초고층 건물에서 사용되는 기법이다. 

p.154
시티콥 센터가 도시 속에서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 기술적 종합체라면 건축물의 용도와 지형과 주변 건물을 적극적으로 잘 이용한 사례는 워싱턴 D.C.에 있는 베트남 기념관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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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중심부에는 ‘내셔널 몰’이라고 해서 ‘워싱턴 기념탑’(1793-1884), ‘링컨 기념관’(1914-1917), ‘국회의사당’이 일렬로 축을 이루는 기념관 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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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죽은 사람ㅇ르 기리는 슬픈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반대쪽 꼭짓점으로 걸어 나올 때는 워싱턴 기념탑 혹은 링컨 기념관 같이 미국 정신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기념관을 바라보며서 밝은 미래를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올라오게 되어 있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이 기승전결이 펼쳐지는 가슴 벅찬 시퀀스를 갖고 있는 기념관이다.

p.161
다른 건축물에 비유를 하자면 절은 미술관이고 교회는 경기장에 비유할 수 있겠다. 

p.164
유럽의 대형 교회는 사실 규모가 크지만 항상 그 건축물의 크기와 비슷한 규모의 광장이 앞에 있고 광장 주변으로 상점들이 위치해서 자연스럽게 시민을 위한 대형 외부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 구조가 생긴 배경은 예배당을 지을 때 돌을 쪼아야 하는 작업 공간이 필요한데 광장이 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업장 주변으로 공사 인부들을 위한 가게들이 생겨나면서 도시가 형성된다. 

p.171
바울은 당시에 길리기아 다소 지방에서 태어난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었다. 다소 지방은 그리스 문화와 히브리 문화가 접하는 지역으로, 그곳에서 자라난 바울은 이중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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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철학도 잘 알면서 동시에 랍비로부터 배워서 유대교의 교리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학문적인 배경이 있었기에 유대교의 교리를 헬라식 철학적 사고의 틀에 담아서 유럽에 전파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지정하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된다. 자연스럽게 집회의 규모가 갑작스럽게 커지게 되었는데, 그 모임을 담을 수 있는 건축물이 없었다. 급한 대로 당시에 가장 큰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당시의 법정이나 상업 거래소로 사용되던 ‘바실리카’라는 건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이것이 이후에 발전해서 성당의 원형이 된 것이다.
공간의 구성으로 보면 교회의 원형은 대형 집회를 할 수 있는 바실리카의 평면에 로마 시대 때 모든 신을 섬기는 공간으로 디자인된 판테온의 돔이 합쳐져서 나온 건축 공간이다. 최초의 대형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이다. … 교회는 시대를 거듭하면서 빛이 더 많이 들어오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고딕 양식의 성당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딕 성당의 원리는 간단하다. 기독교에서 빛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따라서 더 많은 빛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큰 창문이 필요했다. 큰 창문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벽이었다. 당시 건물은 지붕을 벽이 받치고 있었는데, 그 벽에 창문이 크게 뚫으면 건물이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플라잉버트레스’라는 장치를 만들어서 지붕의 하중을 옆으로 전달시켰고, 덕분에 하중을 덜 받아도 되는 벽에는 큰 창문을 뚫은 것이다.

p.177
그래서 혹 대지가 좁아서 제단이 가깝게 보일 수밖에 없는 조건일 경우 건축가는 제단이 멀어져 보이게 하기 위해서 제단 쪽으로 좁아지는 사다리꼴 평면을 만들었다. … 이를 반영한 교회가 근대 건축의 거장은 르 코르뷔지에가 디장니한 ‘롱샹 성당’이다. 이 성당은 제단이 있는 쪽이 사다리꼴의 넓은 변 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뒷자리에 앉아 있는 신자가 제단을 바라볼 때 실제보다 가깝게 느껴지게 디자인되어 있다.

p.194
우리는 기억 속에 변화가 없는 집에 살기 때문에 더 TV를 바라보는 것이다. 적어도 TV 속에는 드라마 속에서 이벤트가 일어나고, 장면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화면의 TV를 사려고 한다. … 어느 공간이 한쪽으로 좁고 한쪽으로 길면 사람의 행위는 그것에 맞게 조정된다. 그래서 건축이 무서운 통제 방식이 되는 것이다. …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p.198
두 번째는 대지 경사의 문제다. 센트럴 파크는 대부분 평지로 되어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반면 남산과 북한산 같은 산들은 모두 경사져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도 모두 한 방향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201
지금의 서울 시민들에게 한강은 마치 비어 있는 마당이나 도가 사상으로 만들어진 선정원 같이 정신없는 서울의 일상에서 벗어난 비움의 공간으로 잘 이용되고 있다. 빈 땅이 있으면 그 땅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뿔리박힌 ‘개발 DNA’가 한강에서는 잘못 작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p.205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상상의 전기>라는 시를 살펴보자.
처음에 아이는 한계도 모르고, 포기도 모르고, 목표도 없이,
그토록 생각 없이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돌연 교실이라는 경계와 감금과 공포를 맞닥트리고
유혹과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p.206
지반이 암석으로 되어 있고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섬이라는 제한 때문에 땅이 부족한 맨해튼의 경우에는 초고틍 빌딩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시기는 산업화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강철, 콘크리트, 유리 같은 새로운 건축 자재가 수급이 되는 시기와도 일치한다.

p.209
(소돔과 고모라) 상업에 근거를 둔 경제 구조이니 땅이 필요 없고, 당연히 고밀화된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밀화가 되면 사람들의 짝짓기 본능이 자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가 탄생한 것이다. … 지금의 서울이 성적 욕망이라는 면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자극적인 도시일 것이다. 다만 지금은 여러 가지 법과 치안으로 일정한 규칙 안에서 그러한 욕망을 분출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이 흩어져서 살아야 하지만, 공업 사회에서는 사람이 가깝게 모여 살수록 이익이 많이 창출된다. 이러한 필요조건에 의해서 사람들은 고밀화된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p,217
창문이 가로로 길어질수록 창문 위에 있는 벽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인방보가 점점 더 두꺼워져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더 큰 공간을 위한 더 큰 창을 만들기 위해서 창문의 가로는 좁게 하되 높게 쌓아서 창문을 세로로 길게 만들었다. 베르사유 궁전같이 큰 방이 있는 건축물에 높은 천장 높이에 키 큰 창문이 있는 디자인이 만들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프랑스의 겨웅 세로로 긴 창문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14세기 경에 있었던 ‘창문세’도 한 역할을 했다. 가로로 폭이 넓은 창문은 구조적으로 만들기 어려워서 부자들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창문의 폭이 넓을수록 많은 세금을 걷는 ‘창문세’를 만들었다.

p.218
서양처럼 높은 벽을 만들어서 창문을 키우려면 큰 나무가 필요한데 그런 큰 나무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실내 공간이 필요하면 간편하게 방의 폭을 유지하면서 한 방향으로 길게 선형으로 늘려서 창문과 접한 실내 공간을 늘려 나가는 방식을 택하였다.

p.220
열린 공간에서 사무를 보는 경우, 업무 시간의 45%를 다른 사람 때문에 업무에 방해를 받아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데 소비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프라이버시는 다른 말로 일정 공간의 완전한 소유를 뜻한다. 

자동차는 이 사회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완벽히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도 바꿔 줄 수가 있어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p.223
유명인들은 익명성이 없기 때문에 점점 더 큰 집을 소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집만이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사무 공간에서도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창의적인 생각이 더 쉽게 나오는 것이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의 사고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p.225
그래서 좋은 사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으로 무질서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적절하게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환경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뇌 연구가 앤드류 스마트의 책 <뇌의 배신>에 의하면 사람은 아무 일도 안하고 멍 때리거나 명상을 하거나 빈둥거릴 때, 즉 뇌의 상태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되었을 때에 창의적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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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하는 불이 부엌으로 이동하면서 현대인은 거실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고, 그 거실에는 불의 흔적으로 TV가 남아 있는 것이다.

자기마의 거실이 없기에, 부족한 거실을 대체해 줄 카페가 많이 생겼다. 카페는 우리의 파트타임 거실인 것이다. 외국에서는 커플이 집에서 빨래하고 비디오를 보면서 데이트한다. 어려서 독립하기 대문에 이런 풍속도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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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의 고수부지는 수평적인 빈 공간이 부족한 서울 시민에게 중요한 쉼의 장소이기도 한데, … 문제는 아파트의 모양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의 두께이다. 현재 보행자가 한강으로 접근한느 것을 막는 주요 원인은 300미터에서 길게는 700미터에 이르는 대규모로 형성된 두꺼운 아파트 단지이다. 그리고 이 아파트 단지 내로는 공공의 상업가로가 관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한강으로의 접근을 막는 가장 큰 문제이다. 가끔씩 있는 공공 도로도 강변도로로 만들어진 둑으로 향하는 막다른 길뿐이다.

p.232
강남의 경우 이 같은 문제의 시작은 최초에 토지공사에서 토지 매각 시 돈을 더 받기 위해서 도로를 만들지 않고 건설사에 큰 덩어리로 땅을 매각한 데 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만들지 않은 공공 도로만큼의 땅을 건설사에 더 팔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땅을 매입한 건설사는 당연히 세대수를 최대한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단지 내로 시민이 관통할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다만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단지 내 도로만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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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화에서 아파트는 환금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돼지의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중산층 국민들은 은퇴 후 아팥트를 처분해서 돈의 기근 시기를 넘긴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는 것은 옛 선조가 자신의 식량을 아껴서 돼지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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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전제품 때문에 사람들은 더 큰 부엌이 필요해졌다. … 지난 50년간 미국 중산층 집의 크기는 두 배 가까이 커졌다고 한다. 50년간 사람의 몸이 커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 구성원의 수는 줄었다. … 커져 버린 집의 공간은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

p.242
다시 한옥으로 돌아가서 공간의 시퀀스를 살펴보자. 한옥에 들어온 사람은 외부 공간인 마당을 거쳐서 실내 공간인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방 안에서 창문을 열면 다시 외부 공간인 마당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순환형 네트워크 구조를 띠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의 경우는 다르다. … 일단 방에 들어가면 거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관계의 다이어그램이 만들어진다. 

p.244
문은 바라보면서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 문은 프라이버시를 ‘0’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하지만 창문은 서로 바라볼 수는 있되 건너갈 수는 없는 건축 요소이다. 창문으로 연결된 공간은 적절한 사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느슨하게 관계를 형성해주는 장치이다.

p.246
건축적으로 보면 주택은 모든 건축의 줄기세포 같은 건축물이다. 주택에서 방을 여러 개 만들면 호텔이 되고, 거실을 넓게 하면 컨벤션 센터가 되고 마당을 키우면 경기장이 된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젊어서부터 주택을 많이 만들어 보아야 한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신진 건축가들이 주택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다.

p.251
간판 경관에 대한 판단은 경험하는 사람이 그 간판을 정보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장식으로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인들에게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은 정보로 인식되어 정보가 과부하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홍콩에 가서 한자로 쓰인 간판을 볼 경우엔 그것들은 모르는 글자이기 때문에 정보가 아닌 아르누보 장식과 같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 특히나 풍경 속에서 사인물(signage) 같은 상징적인 요소들은 사람들 개인의 인지에 따라서 크게 차이를 갖게 된다.

p.252
24시간 중에서 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체 삶 중에서 4%의 삶이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시간이던 가상 공간에서의 시간이 이제는 모바일 스마트폰의 동무으로 시도 때도 없이 잘게 쪼개져서 우리의 현실 속에 촘촘히 박혀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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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정보라고 느끼기 시작한 계기는 1991년도에 <타임>지에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단어를 접하면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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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3차원 공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단기 기억력에서 나온다. 우리는 기억력을 통해서 다른 시간대의 장면 속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머릿속의 의식은 여러 시간대에 존재할 수 있는 4차원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p.257
다음 의문점은 과연 ‘어떤 정보들이 우리의 공간을 구성하는가?’ 였다. 개인적으로 ‘보이드(void), 심벌(symbol), 액티비티(activity)라는 세 종류의 정보로 만들어진다’라고 결론 내렸다. 보이드는 물리적인 양이다.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제 비어 있는 공간의 볼륨이다. 시대와 문화를 떠나서 객관적인 정보이다. 심벌 정보는 간판, 조각품, 그림 같은 상징적인 정보이다. 개인에 따라서 정보 해석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인 액티비티 정보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한 정보이다.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무엇인지가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정보가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따라서 당시의 텍스트만 있는 인터넷 공간은 세 종류의 정보 중에서 심벌 정보만 있는 공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추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보이드 정보와 액티비티 정보가 추가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싸이월드 미니 홈피의 ‘마이룸’ 같은 것이 보이드 정보가 인터넷 공간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고, 페이스북은 액티비티 정보로 만들어진 인터넷 공간인 것이다.
이로써 공간이 정보란느 것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건축 공간은 사람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가?’ … 문장은 단어와 문장 구성이라는 두 가지로 완성된다. 어려운 말로 시맨틱(Semantic)과 신택스(Syntax)라고 한다. 시맨틱은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신택스는 우리가 영어 문법 시간에 배운 1형식부터 5형식까지 있는 문장 형식 같은 것을 말한다. … 건축 공간은 세 가지 종류의 관계라는 문장 구성에 세 가지 종류의 정보라는 단어가 담겨서 전달되는 것이다. 세 가지 종류의 관계들은 실제적(physical), 시각적(visual), 심리적(psychological) 관계이다. 실제적 관계는 볼 수도 있고 그곳에 갈 수도 있는 관계이다. 한강에는 다리가 있어서 강남과 강북은 실제적 관계가 된다. 시각적 관계는 볼 수만 있고 갈 수 없는 관계이다. 한강의 다리가 끊어지고 배도 없다면 강북과 강남은 볼 수는 있지만 갈 수는 없는 시각적 관계가 된다. 심리적 관계는 볼 수도 갈 수도 없지만 머릿 속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고나계이다. 마치 계단식 아파트에서 같은 계단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벽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702호와 703호처럼 말이다. 이처럼 세 가지 정보와 세 가지 관계라는 시각으로 건축 공간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현실 공간부터 인터넷 공간까지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p.262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혁신은 본능적 욕구에 충실할 때 만들어진다.

p.264
만약 100명이 있는 클럽에 한 명만 더 들어가도 100가지 경우의 수가 더 만들어진다.

p.265
건축에는 ‘모듈러’라는 단어가 있다. 근대 건축의 대가 중 한 명인 코르뷔지에가 모듈러를 인체 크기와 연관해서 디자인 하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한 마디로 사람의 평균 팔다리 길이에 맞추어서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p.266
프랙털(fractal)을 든다. 프랙털은 같은 패턴이 스케일만 달리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p.268
우주 전체로는 불규칙이 늘어나지만 부분적인 곳에서는 규칙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p.268
자동차는 바퀴가 굴러가면서 앞으로 나간다. 따라서 자동차의 하중은 아래로만 향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걸으면서 왼발을 내디딜 때에는 왼쪽으로 밀고, 오른발을 내디딜 때에는 오른쪽으로 미는 힘이 있다. … 사람이 걸을 때 횡으로 미는 힘이 발생하게 된면 다리에 미세하게 진동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주변 사람들이 느끼고 옆 사람 걸음걸이의 리듬에 맞게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동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발을 맞추게 되고 그럴수록 다리의 움직임의 폭은 증폭되는 것이다. … 붕괴 …

p.276
일반적으로 외부인이 한 도시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인식이 안 되면 길을 잃기 쉽고 공포감을 느끼게 되며 그러면 주변을 즐길 여유가 없이 경계만 하기 때문이다.

보스턴의 경우에는 뉴욕과 달리 오래된 도시여서 격자형이 아닌 복잡한 도로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스턴은 존 핸콕 타워와 푸르덴셜 빌딩이라는 두 개의 고층 건물이 현재 나의 위치를 알려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p.285
마찬가지로 신사동 가로수길이 변화하게 된 데는 한강 고수부지로 들어가는 토끼굴의 위치가 가로수길과 같은 축선 상으로 옮겨 가게 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p.286
두 개의 도로를 경쟁하게 만드는 거리의 디자인은 둘 중 하나가 죽은 거리가 되는 문제가 있다.

p.290
복잡한 진입로의 또 다른 이유는 건축 이론가 건터 니슈케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니슈케에 의하면 미국처럼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시간 거리르 줄이는 쪽으로 건축이 발달하고, 일본 같이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는 시간을 지연시켜서 공간을 심리적으로 커 보이게 한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은 시간 거리를 줄이는 고속도로가 발달했고, 일본은 좁은 공간을 넓게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 진입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이 같은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져서 기억할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만큼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렸을 때는 기억력이 좋아서 하루만 생각해도 기억할 일이 많고 그만큼 시간이 꽉 찬 느낌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이를 뇌연구 과학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뇌 시냅스 사이의 정보 전달 네트워크 기능이 느려지면서 정보를 프로세스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만큼 기억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p.303
그래서 우리는 건물을 ‘앉힌다’라는 표현을 쓴다. 이렇게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관점이 발전해서 조상들은 풍수지리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p.305
고층 건물에 있는 기둥의 상당수는 이러한 바람의 영향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은 지면에 있는 물체의 저항이 없어지기 때문에 더 빨라진다. 그래서 건물이 높아질수록 바람의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상하이에 가면 병따개처럼 건물의 첨두 부분에 구멍이 뚫린 초고층 건물이 있다.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구멍을 뚫은 것이다. … 마찬가지로 두 개의 고층 건물 사이 공간에서는 바람이 건물에 부딪힌 후 건물 사이로 모여서 더 빠른 바람이 형성된다. … 바레인 세계무역센터는 두 개의 고층 건물 … 입면은 곡면으로 처리되어서 건물에 부딪히는 바람을 두 건물 사이로 흐르게 디자인하였다. 그리고 그 길목에 풍력발전기를 달았다.

p.310
근대 건축의 대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낙수장’이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주택이 있다. … 이 아름다운 주택을 ㅊ어담동 한가운데로 옮겼다고 생각해보자. 그 집이 얼마나 생뚱맞아 보이겠는가?

p.313
위상기하학 관점에서 …. 도넛과 머그잔은 같은 도형이다. 왜냐하면 머그잔에 빨대를 꽂아서 바람을 불면 컵의 안쪽, 물을 담는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이 점점 없어지면서 결국에는 머그잔 손잡이의 구멍 부분만 남아서 도넛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p.323
서양 사람들은 이처럼 기본적인 최소 단위를 추구한다. 그리스 시대의 학자들은 물, 불, 흙, 공기가 세상의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라고 믿었다. 그래서 과학도 그리스 시대부터 근대까지 항상 최소 단위인 원자를 찾고, 원자보다 더 작은 양자의 세계까지 쪼개는 식으로 문명이 발달해 왔다. 알파벳의 26자는 마치 화학에서 원소기회처럼 최소한의 단위인 것이다. DNA는 생명체의 설계도 A, G, C, T의 네 가지 염기로 만들어진 암호문으로 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마치 26개의 알파벳이 순서 배열로 다른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p.325
동양에서는 비워진 상태를 부정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100퍼센트의 긍정적인 상태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은 도가사상을 반영한 일본의 ‘선의 정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선의 정원은 나무로 가득 채워져 있는 정원이 아닌 비어 있는 공간으로 되어 있는 정원이다.

p.330
로마가 서로마아 동로마로 쪼개지고, 서로마는 일찌감치 망하고 동로마만 오랫동안 살아남았다가 서기 1453년에 망하게 된다. 이때 이슬람의 영향으로 발달된 수학을 경험한 동로마제국의 많은 학자들이 이탈리아반도로 망명을 가게 되었다. 이때 넘어온 동로마 출신 학자들의 영향으로 피렌체를 비롯한 도시국가에 르네상스의 바람이 불게 된 것이다.

p.333
서양에서의 공간을 뜻하는 단어는 ‘space’로, 이 단어는 동시에 우주를 뜻하기도 한다. 우주라는 영어 단어는 universe, cosmos, space 이 세 단어가 혼용되어서 쓰인다. 따라서 ‘space = cosmos’라는 결론이 나온다. cosmos라는 단어의 의미는 혼돈이라는 뜻의 chaos의 반대어로 수학적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space = 수학적 규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 공간을 ‘수학적 규칙을 가진 비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공’과 사이라는 뜻의 ‘간’이 합성된 단어이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져 있다.

p.334
구글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포털사이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토종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 밀리고 있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홈페이지의 디자인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구글은 흰색 페이지에 검색어만 찾을 수 있게 미니멀한 디지인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네이버는 첫 페이지에 현재 나오는 주요 뉴스가 한 페이지 가득 펼쳐져 있다. 구글이 한 번에 하나씩 나오는 주요 뉴스가 한 페이지 가득 펼쳐져 있다. 구글이 한 번에 하나씩 나오는 서양 코스 요리 같다면 네이버는 한상 가득 차려 나오는 밥상 같은 구성이다. 한국인들이 네이버를 더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 서양은 논리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 사고방식이 선형적이다. …
반면에 동양은 상호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대적인 가치 체계를 가진다. 

p.343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은 주로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 첫째,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 두 번째는 자연을 이용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 세 번째는 자연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보는 방식이다.

p.352
현재 인간은 좁은 지구에 72억 명이 살고 있다. 조만간 100억 명이 될 것이다. 1950년도에 24억이었던 세계 인구가 50년 만에 세 배로 급증한 것이다. 동물도 인간도 살 곳이 더 없어지고 있다. 건축의 힘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가 아사히야마에서 배운 지혜로 좁은 지구에서 인간과 동물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373
갈수록 처마가 들리는 것은 구조적으로도 이득이 되는 디자인이다. 큰 나무를 구하기가 힘들었을 것임으로 대들보 같은 주요 부재만 큰 나무를 쓰고, 지붕을 받치는 대부분의 공포는 작은 나무를 엮어서 만든 것이다. 지붕을 비를 막기 위해서 당시로는 가장 첨단 기술인 불에 구운 기와로 사람이 던져서 올릴 만한 크기로 만들어서 차곡차곡 쌓아 지붕을 덮었다. … 햇볕을 받게 하기 위해서 방의 폭을 좁게 하여 채광과 통풍을 좋게 하였다. 비가 많이 오는 몬순기후였기 때문에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땅에서 띄워서 지었다. 

p.383
건축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보편적인 의사소통의 도구인 글을 통해서 건축 전공자 밖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건축은 건축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 사용자와 함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제대로 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 어떤 사람에게는 건축이 기술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축이 재테크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차이를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어야 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국내도서
저자 : 유현준
출판 : 을유문화사 201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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