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의 개혁이 그들을 궃은 날씨에도 버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신용(credits)은 금융 시스템에 ‘산소 공급’이나 다름없다. 자유롭게 흐르는 신용은 눈에 띄지 않게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 흐름이 멈췄을 때도 당분간은 모든 것들이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다.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를 쓰러뜨린 저산소 사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를 글로벌 금융위기로 바꾸며 혼란을 촉발시켰다. 그 이후로 중앙은행들과 시장 전문가들은 동일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경계하며 신용 상태에 대해 매의 눈으로 지켜봐왔다.
작금의 안전자산(safe assets) 쟁탈전은 금융위기가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기는 비슷한 점이 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이 위험통화를 회피하면서 달러 가치가 다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쟁 지역과 가까운 유로에 대한 헷징비용(Hedging costs)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변동성(volatility) 증가와 더불어 장기간에 걸친 갈등이 달러화(greenback) 가치를 지속적으로 올릴 것이라는 트레이더들의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 국채에 대한 러시는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채 수익률을 끌어내렸다*. 수익률보다 안정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서 대출업체들은 회사채 스프레드를 상승시켰다(역자주: 안정적인 국채와 상대적으로 위험도 높은 회사채 간의 수익률 격차가 커진다는 의미인 듯).
* 역자주: 기대 인플레이션과 국채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 ①경제 주체들이 예상하는 인플레이션 수준 상승 ②미래 시점에 실현되는 고정 수익의 실질 가치가 하락. 가령 10년 후에 원금과 이자를 N만 원 받게 되는 명목 채권의 매력도가 떨어짐 ③명목 채권의 입찰 경쟁률 저하 및 가격 하락 ④채권의 가격 인하 = 채권 수익률(이자율) 상승. 그러나 현재 이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
모두 다 안전성을 향해 달려드는 현상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달러 강세는 그 돈을 빌린 국가들의 부채 부담을 증가시키고,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비중이 높은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위축시킨다. 그러나 금융시장 안정에 가장 큰 위협은 단기적인 자금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출을 받는 기업들에게 금융시장이 가하게 되는 압력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 재정적 폐색증이 온다. 결국 다른 방면에서 건강했던 기업들조차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단순히 환율만 상승시킨다면 달러 사재기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그로 인해 달러 공급이 부족하게 되면 발생한다.
그런 일이 2008년에 일어났었다. 은행들은 서로 대출을 꺼리고 몇 달 새 금융기관 간 대출 비용은 콜금리(overnight rate, 역자주: 금융회사끼리 자금을 30일 이내의 초단기로 빌려주고 받을 때 적용되는 금리. 통상 콜금리는 1일물overnight 금리를 의미하며 단기 자금의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를 완전히 상회했다. 2020년 3월 세계가 코로나로 인한 폐쇄에 들어갈 땐 이 패턴이 훨씬 가벼운 수준으로 재현되었다. 단기상업대출 비용에서부터 다른 통화 대비 달러 수요에 이르기까지 통화시장(money market) 스트레스를 가리키는 지표들 모두 푸틴이 일으킨 전쟁의 영향은 아직 미미하다고 말하고 있다(도표 참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중앙은행들의 유동성이 넘쳐난다는 데 있다. 2020년 3월부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중앙은행(Bank of Japan), 영국중앙은행(Bank of England Bank)은 9.1주 달러(세계 GDP의 11%)를 신규 준비금으로 발행했다. 이런 유동성의 홍수 이후, 컨설팅 회사인 Capital Economics의 조나스 골터만(Jonas Goltermann)은 자금 조달에 대한 부담이 있다는 게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더 깊은 이유는 통화시장에 통합적인 환기장치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연준과 다른 5개의 대형 중앙은행들 사이의 영구적인 스왑 공조(swap line)는 지금 같은 긴장의 시기에 그들의 자국 통화를 달러와 교환해 자국 기업들에게 분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외에도 보조적으로 연준으로부터 달러를 손쉽게 빌릴 수 있게 해두었다.
한편 은행들은 일상적인 현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더 이상 서로의 무담보 대출(unsecured loans)에 의존하지 않는다. 달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대안이 있다. 바로 금융기관과 대기업이 매일 채권을 담보로 약 2.5조 달러를 빌리는 repo market(역자주: 초단기금융거래시장)이다. 고품질의 담보 덕분에 이 시장은 추세(run)에 덜 민감하고 은행(및 은행의 고객) 역시 위기에 덜 취약해진다. 이에 더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19년 일련의 유동성 붕괴 이후부터 최후의 대출자 역할을 하고 있다.
장기신용 여건도 눈에 띄게 풍랑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 위험도가 높은 고수익 채권(“junk”)의 스프레드는 연초부터 상승하고 있지만 역사적 최저점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2020년 3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로트피 카루이(Lotfi Karoui)에게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6조 달러의 미국 고수익 채권시장(high-yield bond)의 약 5분의 1이 치솟는 원자재 가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기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익을 보고 있는 석유, 금속, 광산 회사들에 의해 발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발행자들은 높은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잉여 수익을 부채를 갚는 데 사용하고 있다. 채권 보유자들은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 지리적으로 전쟁에 인접한 유럽에서는 4,500억 유로(4,960억 달러) 규모의 고수익 채권시장이 전쟁으로 인한 타격을 입긴 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투자자들은 아직 심각한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
수 년 간 지속될 수 있는 갈등을 2주 동안 지켜보고서 신용여건이 계속 온전하게 유지될 것이라 주장하는 건 어리석다. 카루이(Karoui) 총재는 중앙은행들이 2007~2009년 금융위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충격에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통화의 수호자들이 깊이 겪지 못 한 종류의 위험이 큰 문제인데, 예를 들어 장기간의 전쟁이 또 다른 훨씬 더 광범위한 세계 공급망 붕괴로 이어질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적어도 현재 서방의 금융 시스템은 러시아 요새의 금융 시스템보다 훨씬 더 충격에 탄력적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사들 중 일부를 번역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 기사도 한 번 읽어보세요: The Economist 3월 12일 주간호의 기사입니다.
THE ECONOMIST Mar 12th 2022 | 서구의 신용시장(credit markets)은 잘 버티고 있다 (현재 글)
THE ECONOMIST Mar 12th 2022 | 세계는 러시아의 거대한 원자재 공급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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